안 본다(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일기 속에는 무서워하는 내가 있다. 졸업할 수 있을지 두려웠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어쩌면 졸업 후의 더 큰 공포를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에 천착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었던 건 떠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은 채 버티기에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사람들은 남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고, 남은 사람들은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지금은 알고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걸. 파도를 이기든 보든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걸.다시 새로움을 향해 출발해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주고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인 뒤 과감하게 등을 눌러 다시 세상으로 되돌려준다. 여러 길로 갈라진 평행우주 속에서 용감하게 떠난 나와 용감하게 남은 나, 모두를 찬양한다. 그렇게 한발 더 내딛는 연습을 한다. May the force be with me.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p3132.

비난의 대상은 아픈 아이도, 달려오는 엄마도, 뛰지 못하는 아빠도 아니다. 갈 수 있으면서 뛰지 않는 아버지가 있으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뿐, 그런 경우에는 그것이 아버지가 아닌 엄마라도 비난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정에 대해 비난할 자격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나는 한 여교수를 혼자 몰래 존경한다. 분야가 달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드물지만 언젠가 그 학과 대학원생을 우연히 만나 “그 교수님은 어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남성 사회에서 정착한 여성 과학자는 언제나 호기심과 선망의 대상이다. 어떤 성향인지, 연구 스타일은 어떤지, 강의는 어떻게 하시는지, 요즘은 주로 무엇을 연구하시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대답은 그렇죠.아이가 아프다고 학교에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였다. 제가 보기에는 정년을 앞두고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제 대학원생들을 항상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교수인데 고작 그런 시선이라니. 그것도 아직 젊은 대학원생들의 시야가 그렇게 구태의연하다니 저는 정말 깜짝 놀랐다.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p 107~108.

취향이 비슷한 친구이기도 했고 그냥 아는 사람이기도 했고 우연히 한 번 만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왜 아픈지 한편으로는 알았고, 한편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과 지지부진하고 연락도 안 되고 하면서 몇 해를 보냈고, 그 속에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별별 사건에 휘말려 별별 감정에 직면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친구들도 만나거나 만나지 않았고 친구끼리 문제가 생기는 것을 목격하거나 함께 휘말렸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표현하거나 단정하기 어려운 감정과 마주했다. 그것은 「네」나 「아니오」가 아니었다. 기쁨이나 슬픔도 아니었다. 분노나 절망도 아니었다.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112.

어느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워왔다.

저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우주비행사가 될 것입니다.우주비행선을 타고 높이 우주로 날아갑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안 돼! 노래는 계속 됐어.

천왕성을 지나 해왕성을 건너 은하계를 여행할 때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 인사할지도 모른다.

이쯤 되자 나는 거의 눈물을 글썽이게 됐다.

그렇게 멀리 가? 그러면 엄마는 슬퍼하실 텐데 그냥 노래야 노래 엄마랑 같이 지구에서 살자 응!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p 154~155.

언젠가 해가 지는 것을 보려고 충동적으로 관악산에 오른 적이 있다. 정상에서 멋진 노을을을 보며 여러 가지 상념을 떨쳐버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려오자 사방이 캄캄해서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있는 곳이 등산로의 바위인지 마른 계곡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낙엽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가 나를 위협해 올 무렵 두 개의 빛이 보였다. 하산길에 내가 오르는 것을 봤다는 등산객 부부였다. 곧 어두워질 텐데 아무런 장비 없이 혼자 휘청휘청 산에 오르는 나를 보고 혹시나 싶어 산 중턱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좌절한 젊은이가 잘못된 선택을 하러 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시 나타나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좌절한 게 아니라 그저 경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길로 내려갔을 수도 있는데, ‘조만간 사라질 위험에 처한 일시적인 존재’를 위해 어두운 산 속에서 랜턴을 들고 기다려주다니. 배부된 랜턴을 들고 앞서가는 어른들의 발자취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는 그날 저녁은 정말 따뜻했다.해가 지는 것을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왜 슬픈지 따지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게 43번째인지, 44번째인지 추궁도 하지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 환율도 듣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가 슬플 때 즉시 해가 지도록 명령할 수는 없지만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아니면 알려준다. 천문학자가 생각보다 꽤 도움이 된다.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p164~165.

무엇이 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인생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안개 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됐다.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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